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이동 : 무역이란 무엇인가?

2024. 4. 24. 19:43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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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개념

무역이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상거래를 의미하며 주로 재화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초창기의 무역은 서로의 산물을 교환하는 것에 국한되었으나 최근 무역의 형태는 단순한 상품의 교환과 같이 보이는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 및 용역과 같이 보이지 않는 무역 및 자본의 이동까지도 포함됩니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무역이란 개념은 단순히 특정 상품의 효용가치가 적은 곳에서 효용가치가 높은 곳으로 이양시킴으로써 재화의 효용 및 경제가치를 증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재화의 생산요소인 원료, 서비스, 운송, 여객, 노동 및 자본의 이동까지도 포함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무역의 특징

무역이 이루어지는 주된 이유는 각 나라들의 자연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을 포함한 경제적 조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들이 개별 국가마다 서로 그 특성을 달리하기 때문에 무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무역처럼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국제 상거래는 아래와 같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국제상거래 특징

첫 번째로, 최근에는 항공운송에 대한 수요도 높아 항공운송도 중요시되지만 무역은 바다를 주된 통상 경로로 발전해 왔고 지금도 대부분의 무역 상품의 이동이 해상운송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해상운송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해상 운송의 위험을 경감시키기 위한 해상보험에 의해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무역은 상이한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상거래이기 때문에 국내 거래보다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역거래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위험성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 해상보험과 신용장 등 제도적 기반으로 인해 무역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역은 국제 상관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국제상관습이란 국제 상인들이 제도적으로 만든 일종의 규칙으로 일반적으로 관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습은 매매 당사자가 체결하는 무역계약에 보완적인 기능을 하며 세계적인 통일법이 제정되지 않은 현실에서 규칙을 의미합니다.

 

세계 무역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수렵과 농업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경제체제가 수렵과 농업 위주의 경제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수렵과 농업위주의 경제체제가 개인이나 가족단위의 자급자족제도인데 비해서, 현대사회는 분업과 교환의 상호의존제조라는 점 입니다.

 

분업이 더 심화되고 교환의 영역이 더 넓어지면서 보다 더 넓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간은 모든 지혜를 동원했습니다. 이 같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꿈이 콜럼버스와 마젤란 등을 낳게 하였고 결국은 신대륙의 발견과 이로 인한 온갖 인류의 영욕을 수반하게 되었는데요.

 

일찍이 영국의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사회 한 나라의 경제 발전은 그 시장의 크기에 제한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시장이 너무 협소하면 그 경제는 그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인데요. 이리하여 인류의 역사는 내륙교통수단의 한계에 얽매여 침체한 사회보다는 내수로나 해운에 의하여 좀 더 넓은 시장을 가질 수 있었던 사회에 의해 주도되어 왔습니다.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고대 이집트 문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화, 인더스/갠지스 강을 중심으로 한 인도문화 그리고 황허강 유역의 중국문화는 모두 큰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 후 다른 문화권은 그 이상 바다를 이용하여 더 멀고 더 넓은 시장개척을 하지 않았으나 유독 서양문화권은 지중해를 이용한 활발한 국가간의 교역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미 B.C. 1000년경에 이집트와 레바논 간에는 곡물, 목재 등의 교역이 성행하였으며, 또 B.C. 800년 경에는 지중해의 로드스섬을 중심으로 한 페니키안에 의한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져 일부 상인들의 자본축적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본축적이 신대륙의 발견과 과학의 발달을 촉진시켜 결국은 무역을 일찍이 서두른 서양문화권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동양과 서양의 끈을 잇는 것이 실크로드입니다. 실크로드는 동/서양의 문화교류를 통해서 중국의 비단과 제지술이 서양으로 전해지고, 서양의 옥이나 보석, 유리제품과 같은 재화들이 동양으로 전해지면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연결하는 국제교역의 루트가 되었습니다.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를 말하며 이 길을 통해 고대 중국의 특산물인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한나라 시대에 타림분지 연변의 오아시스 도로를 지나서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국과 서방을 연결하고 있던 길을 가리키는데, 동서교통로라는 뜻으로 확대해석하여 서아시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길과 스텝을 지나는 길(초원길), 헤상 교통로인 바닷길까지 실크로드 안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크로드는 문명을 낳아 키우고 오가게 한 길입니다. 사막이나 바닷물에 묻혀버린 죽은 길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길이며, 그저 나들이나 하는 길이 아니라 동서양을 잇는 문명의 동맥이고 요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무역의 역사

우리나라 무역은 고대시대인 고조선 그리고 삼국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무역은 동북아 해상무역의 중심 거점지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본격적으로 행하였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국제무역을 행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꼬리아(Corea)’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시대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남송을 비롯해 왜나라, 여진, 거란, 동남아, 아라비아까지 교역을 수행하였고, 고려시대의 최고 무역품은 고려인삼과 고려청자였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에서는 18세기 후반에 국내 생산력의 발전과 국내 상업의 발달로 국제무역은 점차 번성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고려시대에 비해 표면적으로는 별로 발전을 보지 못 하였습니다. 교역대상은 명과 청나라 그리고 일본이었으나 중국에 대해서는 사신 수행원에 의한 삼역과 기타 청구에 의한 교역이 행하여졌으며, 일본에 대해서는 통신사와 왜관무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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